3학년에 올라가면서 진로를 바꿨다.
김대중 후보의 유세장에서 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중앙포토]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이 펴낸 『호남학산책』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후 입대가 연기된 것을 보면 아버지의 노력이 성공한 모양이었다.자연히 아버지를 따라 이사와 전학을 여러 번 다녔다.예전에는 신춘문예와 별도로 학생논문이란 부문이 있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초기에 나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조문객을 받는 상주 역할을 했다.
그 사람은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예술가는 춥고 배고프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이런 사정을 알고 반정부 성향 분류에서 뺀다고 굉장히 애를 썼다.지역주의 깨려면 호남 대통령 나와야 그해 4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문인들이 너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렵습니다.나는 용기가 없어 학생 시위에 앞장서지는 못했다.